▲ 희망이천 발전전략 연구원장 김진묵오늘(2017년12월28일) 이천시 율면 산성리에 있는 어재연 장군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문득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에 대한 애환이 생각나 자료를 찾아 올려봅니다.
서기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해군에게 빼앗겼다가 136년 만인 2007년에 돌아온 귀중한 문화재가 수자기(帥字旗 : 가로4.15m, 세로4.35m) 입니다. 바로 이천출신 어재연 장군의 군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수자기는 2017년 10년간의 짧은 고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된 전리품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화재 관계자들이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여러 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미국 법 때문에 반환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장기 대여를 제안 하는 쪽으로 의견을 나눴고, 박물관 측도 ‘10년 동안 한국에 임시 대여해주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 그 기간이 도래하여 2017년이 약속한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원통하고 억울하지만 우리는 조선 군대의 자존심인 수자기를 반환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군기는 수백 종이 있었으나 현존하는 수자기는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수자기의 슬픈 역사는 당시 미국은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아 대동강에서 불에 타 침몰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이 우리나라를 군함 5척과 해군 1200여 명으로 구성된 ‘아시아함대’를 동원하여 1871년 6월 11일 조선군이 강화도를 지키는 광성보에 함포를 쏘고, 상륙 부대를 동원해 총공격을 하였습니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조선군의 총 사령관이 바로 이천출신 어재연 장군입니다. 그는 동생 어재순을 비롯한 군사들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최후의 1명까지 용맹하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재연 장군을 비롯해 350여 명의 조선군이 모두 장렬히 전사합니다. 미국 군은 3명만이 죽었습니다. 낡은 갑옷을 입고 창과 칼, 돌멩이로 조선군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항전했는지, 그 당시 미 해군 소령으로 전투에 참전한 윈필드 슐리는 자신의 회고록에 조선군의 용맹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조선군은 노후 한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후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용감히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미군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조선 군대의 용맹함과 애국심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이때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은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미국에 가지고 갔고, 이후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패했지만 최후의 1인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열악한 구식무기로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운 조선군의 용맹스러운 깃발이 미국의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으로 다시 가야만 한다니 어찌된 일인지 나도 모르게 울분이 가슴을 조여 옵니다.
미국에는 조선군 총사령관의 소중한 깃발이 전쟁에서 승리한 단순 전리품에 불과하겠지만, 한국인에게는 비록 전투에서 패했지만 맨몸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조선군의 애환과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교훈이자 우리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유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