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참여연대 이연실 다문화위원장
최근 두 사람 때문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찬이 아빠와 아일란 쿠르디 아빠는 참척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두었던 이 시대 아버지들입니다 '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함함한다' 는데 인간의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으로서 그 깊이와 넓이를 따질 수 없습니다 인간을 가장 슬프게 하고 고통의 수렁에 빠뜨리는 게 자녀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 앞에서도 때로 불합리하고 굴욕적인 삶의 폭력 앞에서도 살아내는 가장 큰 이유는 '새끼'를 둔 아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새끼가 있으면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잡지만 세상을 다 얻어도 새끼가 죽으면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답니다 누구도 그런 비극을 원치 않건만 살다 보면 순식간에 비극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연한 일로 미얀마 양곤에서 한국을 방문한 찬이 부모님과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김학영ᆞ정영남 선교사 부부입니다 그들은 60대 후반입니다 안락하게 손주들의 재롱을 볼 시기입니다 자녀들이 보내드리는 해외 여행을 떠나 어색하게 V사인을 한 채 자랑스레 사진을 찍을 나이입니다 그들은 환갑이 넘어 미얀마로 가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 찬이의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찬이 아빠 김학영 선교사는 경상도 안동이 고항이며 양반가의 후손입니다 당시에 국민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수많은 대한민국 또래들에 비해 명문대 상대를 다녔습니다 장교 출신으로 삼성물산에 입사해 해외 지사장으로 외국 생활도 많이 누렸습니다 1970년대 당시로서는 일반인들이 비행기를 타는 일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아들 딸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습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장으로서 자부심도 넘쳤습니다 호기도 부릴 수 있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때로 너무나 가혹하고 참담하고 잔인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강력한 펀치로 한 방에 허공으로 날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양반 가문의 자제답게 편안히 붓글씨를 쓰고 있던 그에게 스위스 한국 영사관에서 걸려온 갑작스러운 전화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남들은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S전자에 합격하고 첫 출근 한 달 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외아들 찬이, 웃으며 여행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에 그의 영혼은 얼어버렸습니다 찬이가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스위스 리스탈 역에서 내릴 때 기차 문이 빨리 닫혀 배낭이 기차에 끼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모른채 기차가 달려 100m 이상 산채로 끌려 갔습니다 키가 180cm가 넘는 건장한 한국 청년의 다리는 기차 바퀴에 끼어 절단됐습니다
과다 출혈로 죽어가면서 바른 생활표였던 찬이가 마지막 남긴 말은 '한국인'이었습니다 낯선 나라 하늘 아래서 숨을 거두면서도 찬이는 부모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했던 겁니다 그는 10여년 전 26세의 젊은이였으나 지금은 한 줌 재로 모교의 뒷동산에 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2억 2천만원의 '김찬 장학 기금' 이 만들어졌고 늙어가는 부모가 60대에 미얀마어를 배워 선교사 일을 하는 걸 찬이는 하늘나라에서 고마워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해할 듯도 합니다
찬이 아빠가 쓴 책 '아름다운 동행' 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그의 삶은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로 날아가 찬이를 화장해 유골로 안고 돌아오는 일주일간의 절절하고 애틋한 기록이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감동적이어서 새벽까지 읽다가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 했습니다 20대 청년의 아들을 둔 엄마로서 눈물이 앞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터키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 역시 수시로 눈물을 돋게 했습니다 세살짜리 남자아이가 바닷가 모래 사장에 엎드린 채 죽은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습니다 아~하고 신음소리를 냈던 건 세살 시절의 아들을 손잡고 다닌 엄마로서의 기억들 때문입니다 그 나이 남자아기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누구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일란 쿠르디는 시리아의 운명이나 가족의 비극에 대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시리아를 떠났던 아기입니다 지중해만 무사히 건너면 희망을 품고 새 삶을 시작해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은 그 가족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익사해 해변에 쓸려온 막내 아들을 보고 아일란 쿠르디의 아빠는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절규했습니다 '이런 비극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습니다
홀로 남은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시리아 고향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도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이발소를 하며 소박하지만 단란하게 살았던 그에게 조국 시리아의 비극은 그의 삶도 철저하게 파괴시켰습니다 지금 시리아는 국민 절반이 난민입니다 내전 이전만 해도 시리아는 중동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나라,음식이 맛있는 나라, 미인이 많은 나라로도 유명했으나 지금은 폐허처럼 변하고 통곡이 끊이지 않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도 시리아 난민들을 여럿 보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국가 기능을 상실한 조국 시리아를 떠나와 한국 땅에서 겉돌고 있습니다 20대 청년들은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리면서 '일좀 시켜달라'고 사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리아 노인은 서울 노상에서 거지가 되어 '형제여 신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주오'라며 애처롭게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권 신자들이 먹을 것을 주거나 돈을 쥐어주면 '신의 축복이 당신에게'라고 말합니다 마치 신이 버리거나 저주라도 한 것 같은 난민 걸인이 한국 땅에까지 와서 신의 축복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신이 자신의 창조물들이 통곡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들이거나 우연찮은 사고들일 것입니다 찬이 아빠도 아일란 쿠르디의 아빠도 예고없이 도둑같이 찾아든 불운을 겪었습니다 찬이 아빠는 현재 많은 미얀마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난한 미얀마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초기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처럼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내려놓고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헌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일란 쿠르디는 쿠르드족 후손입니다 수천 년간 유목민으로 떠돌다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1차 대전 직후 나누어진 중동 나라들에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중동 아랍 사람들은 쿠르드족들을 유머 소재로 많이 쓸만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나마 쿠르드스탄 지역에 살고 자치 군대 페쉬마가를 보유한 지역에서 사는 이들은 조금 낫습니다 조상대대로 난민 신세였는데 여전히 공식적인 난민이 되어 가족의 생과 사가 갈렸습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아빠는 ' 가족들의 무덤 곁을 죽는 날까지 떠나지 않고 기도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는 아일란 쿠르디가 생전에 좋아하던 바나나를 종종 무덤 앞에 놓아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무덤지기로서의 삶이 아니라 혼돈에 빠진 아랍 국가들이나 시리아를 위해 뭔가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에 뛰어들기를 희망합니다 쿠르드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우 용맹해 용병으로 이름을 날리었듯 그의 삶이 용기있게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미 한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 세계적인 공인이 되었습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유럽 지도자들의 마음을 열었고 수많은 기적을 낳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 활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내전으로 가족을 다 잃은 가장으로서 가는 곳마다 가슴을 열고 동참해 줄 수 많은 지구촌 벗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죽은 아들이 엎드린 채 발견된 한 장의 사진으로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수만 명의 여러 나라 난민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 길이 열렸습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로 역사를 바꾸기도 합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품으로도 유명한 킴 푹처럼 골수를 파내는 듯한 깊은 상처를 딛고 용서와 화해의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그 한 장의 사진이 베트남 반전에 불을 당겼듯이 아일란 쿠르디 이 꼬마의 해변가 시신 사진 한 장이 뿌리 깊은 중동 문제와 아랍 난민들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창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동 문제의 실질적인 원인 제공자들이기도 한 유럽 강대국 지도자들의 심장을 이미 세차게 두드리고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는 아노미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더구나 시리아는 집단 아노미에 빠져 있습니다 아일란 쿠르디는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며 이루어도 힘든 일을 죽음으로써 이뤄낸 기적의 아기가 되었습니다 익사체로 나타나 어떠한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하게 충격을 던져 줬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없이 인류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양심을 깨우는 중입니다 자국의 손익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정치 지도자들과 난민들을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등 돌리던 일반인들에게 국제적인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아빠는 현재 40살입니다 중동 사람들 평균 수명에 비춰보면 그는 앞으로 30년간 더 살 것입니다 중동인들 기질상 그는 절대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세월동안 상처에 갇혀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 죽을 것인지 베트남 출신 킴 푹처럼 평화대사가 되어 인류애를 호소하는 국제적인 인물이 되어 생을 마감할지 아직은 모릅니다 이발사로 살아온 그가 세상 사람들의 양심의 털을 깎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21세기 천재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핏줄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일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아일란 쿠르디 아빠도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신이 그에게 준 시대적ᆞ 역사적 소명일지 모릅니다 한국인 찬이 아빠처럼 시리아인 아일란 쿠르디의 아빠도 자신의 비극을 승화시킬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신이 내린 소명은 선물이 됩니다 우리는 그걸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기적을 일으킨 찬이와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이 생물체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하게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